<신간소개> 머니 트랩 - 기술 기업의 거품에 대한 소트트뱅크 전최고재무책임자의 회고록 / 알록 사마 / St.Martin's Press

한국은 자원도 없고 강대국에 둘러싸여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 살아온 터라 눈치 'noonchi'가 필수인 기묘한 나라인데, 한국 문화가 먹히는 이유는 한국사람들이 근본적으로는 인지상정-역지사지의 나라라 그렇다.

손정의 회장이 왜 한국을 도와주려고 하는가?
비정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살아남는 로닌일지라도 한국 사장들과 회장들은 그래도 같은 한민족이라는 한 가닥의 정서적 소프트파워가 있기 때문 아닐까?


다 떠나서 한국인들은 똑똑하고, 트렌드에 민감하고, 전통과 서양에서 온 가치들을 빠르게 흡수하여 기묘한 한국화를 잘 해낸다. 또한 한국인들은 죽기 살기로 싸운다. 이길 때까지. 

아무것도 없는데 일단 싸우면 절대로 포기를 안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근거없는 배짱이 있다.
계급 고착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모할 정도로 일단 들이받고 보는 정신이 있다.
때로는 격하고, 무례하고 무분별해 보인다. 그런데 희한하게 안 망하고 계속 하고 있으며 가끔씩 유의미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한편, 치킨과 맥주로 낮에 격렬하게 서로 경쟁하며 싸웠던 일을 무마하며 아까는 미안했다고, 술 한잔 하거나 밥을 먹으면서 감정을 중화한다.
패자에게도 측은지심을 가지고, 업계에서는 적일지라도 그 사람이 죽거나 혹은 그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자기 일처럼 달려가서 도와주기도 한다. 약간 이상하다. 낮에는 죽기를 각오해서 이겨놓고 밤에는 너무 심했나? 돌아서서 후회하는,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다.

한국은 하이퍼모던사회로 가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문화의 소프트파워의 근간은 이렇듯 초코파이같이 동글동글한 마음일 것이다. 착한 한국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나쁜 놈들보다 훨씬 많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내가 노력하면 달라질 거라고 대다수는 믿고 있으며, 진짜로 노력을 한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평생 학습자의 태도를 갖추고 있다. 왜냐하면 유교적 군자론을 믿기 때문이다. 

군자는 어려서부터 '맹자왈 공자왈'하며 멸사봉공하다 현자같은 지혜노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니까 5세부터 시작해서 70대가 되어도 전국민이 계속해서 공부한다.
우리 동네 지나가는 아줌마들에게 돌을 던지면 개중 절반 가까이는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을 것이다.
대체로 국가자격증 2-3개 없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니까 국민 대다수가 만능에 가깝다.

모르면 배워야 한다고 진짜로 믿고 혼자서 계속 공부하고 마침내 해낸다! 

따라서 손정의 회장을 비롯한 세계의 인재들과 기술 재벌들이 착한 한국 기업들을 많이 도와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 한국 기업들은 그들에게 은혜를 갚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면 우리는 도리와 예의, 은혜 갚은 까치 민담, 염치와 예수님의 황금률, 부처님의 자비심을 똑같이 중시하는 -
메이저 종교들이 서로 안 죽이고 잘 지내는 (포스트 유교 + 단군사상 + 기독교 + 한국 선불교) 세계에 몇 안되는 특이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손정의, 마크 저커버그, 레이 커즈와일 등 기술 재벌과 금융공학자들과 세계를 움직이는 큰손들은 무엇을 꿈꾸는가? 

테크기업에 투자하고 있다면, 또 큰손들의 머릿속에 들어가보고 싶다면 

겨울 휴가지에서 꼭 읽어봐야 할 빅머니와 기술 비져너리들과  손정의 월드의 꿈과 진실


해외판권계약 내역

미국: St. Martin’s Press (WE)

영국: UK (Macmillan) 

인도: Pan Macmillan 

중국: CITIC 

일본: Kobuncha 

대만: 딜라이트프레스

베트남: 타임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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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Money Trap-The Money Trap: Lost Illusions Inside The Tech Bubble

원저자명: 알록 사마 Alok Sama

294페이지 / 완성 PDF 있음 - 검토 원하시는 출판사께서는 요청해주세요.


타겟 독자: 월간 조선이나 한경, 중앙일보의 유료구독자들/ 벤캐피탈분야 종사자


안녕하세요? 알렉스리 에이전시의 이주연입니다.

지금 세계는 가히 인공범용지능의 도입 시기와,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을 돌이킬 수 없는 지점으로 바꿀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들끓고 있습니다.


지난 5일 손정의 회장은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한국의 미국과의 조세 협정에 도움을 준 것에 대해 대통령의 감사를 받으며, 앞으로 모든 국가 역량을 인공범용지능 설계에 쏟아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저희 독점 저자인 레이 커즈와일의 《인공범용지능이 온다》가 2028년에 출간될 예정인 것은, 손정의 회장의 코멘트를 보면 인공범용지능의 도입 시기를 기술 지배자들이 그 때로 맞췄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즉 2029년에 큰 테크토닉적 변화가 일어나리라 예상됩니다. 

과연 판 전체를 짜는 이들 기술·금융공학·투자 큰손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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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 드리는 책은 손정의의 오른팔이자 수학공학자이며 소프트뱅크의 전 재무총괄이었던 알록 사마의 회고록입니다. 


도대체 손정의의 마음속에 기술 투자와 미래는 어떻게 자리 잡고 있을까요? 손정의에 대한 신화적인 도서들은 많지만, 그의 최측근으로 모건스탠리에서 발탁되어 역사상 가장 큰 기술 회사들의 인수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손정의의 표현대로라면 “손정의의 마스터셰프”였던 알록 사마가 쓴 이 책을 읽으면 손정의의 머릿속뿐 아니라 우리가 신문에서 매일 접하는 세계 최고의 기술 기업 대표와 금융공학자들의 세계에 함께 들어갔다 나올 수 있습니다.

사카모토 료마의 광팬인 손정의가 추구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상”은 단지 듣기 좋은 수사가 아닙니다. 일론 머스크가 인간-인공지능 융합형 미래를 꿈꾸며 화성에 핵을 쏴 온도를 낮추겠다는 극단적 발상을 하는 반면, 손정의는 인공지능 시대에 고독해질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휴머노이드 돌보미, 인간과 공생하며 인공지능이 인간을 보호하는 미래를 꿈꾸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탁구광이며, 농민이었다가 사무라이로 번에 속해 일하다가 에도 막부의 폭정에 반항해 무사 계급을 떠나 장사를 시작해 거상이 되었던 사카모토 료마의 초상을 사무실에 두고, 스스로를 제다이라고 생각하는 손정의는 놀라우리만큼 정확한 메가트렌드 포착력을 지난 수십 년간 발휘해왔습니다. 야후, 보다폰 재팬, 알리바바, 틱톡, 영국 ARM 홀딩스 인수 같은 성공뿐 아니라 위워크 사기꾼 아담 뉴먼에 당했던 실패까지, 2019년까지 소프트뱅크의 최고재무책임자로 일했던 저자는 수많은 재계 인물들과의 독대와 비밀 거래 성사 현장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일례로, 페이스북 대표 저커버그가 처음으로 손정의를 독대했을 때 “손회장님이 저희 주식을 그때 안 사셔서 참 죄송하네요” 고 말하며, 자신의 새해 목표는 

"1. 채식주의자로 일 년 살기" 

“2. 고기를 먹고 싶다면 직접 사냥한 고기만 먹기”

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닭을 목졸라 죽이고 버팔로를 사냥해 한 달 동안 버팔로 절인 고기만 먹으며, 머리를 박제해 셰릴 샌드버그의 사무실에 걸어뒀다는 일화가 책에 나옵니다.

이렇듯 저자는 빈 살만 왕자, 레이 커즈와일, 각국 대통령, 옥스브리지 출신 기업공학자들, GAFA 대표들과 그들의 인맥·학맥이 만들어내는 세계 금융·기술의 변혁을 영화처럼, 스파이 소설처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저자는 《위대한 개츠비》처럼 스스로를 손정의라는 닉 캐러웨이의 세계에 초대받은 개츠비로 그리며(저자는 스스로를 손정의라는 닉 캐러웨이의 세계에 초대받았던 개츠비로 책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미래에 대해 그리고 있는 비전과 서로 다른 투자 스타일, 기업 사냥과 인수합병에 대한 가치관 차이를 제임스 본드 영화 속 악당 캐릭터처럼 묘사합니다. 

손정의의 욕망은 아버지를 만족시키려는 집착에서 비롯되었고, 때로 과도한 낙관주의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비전펀드의 위워크 투자 실패와 엔비디아 주식을 너무 일찍 매각한 실수조차 그의 수많은 성공 중 하나의 실패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스티브 잡스를 만나 애플폰과 비슷한 디자인을 직접 그려 보여주며 일본 내 독점 판매권을 요구했던 손정의의 혜안은, 베테랑 수학공학자들의 합리적 예측을 뛰어넘는 제다이 같은 자기결정력으로 보입니다. 

손정의는 현자의 면모뿐 아니라 악당의 면모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2인자였던 아로라 니케쉬를 제거하기 위해 미인계를 썼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결국 니케쉬는 소프트뱅크를 떠나 팔로알토 네트웍스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저자 자신도 이해상충과 언론의 악의적 소문을 견뎌야 했습니다. 고위험·고배당의 금융판에서 더러운 기만과 언론의 칼날, 각종 부비트랩은 손정의가 준 개인 제트기를 타고 오개국어를 하는 일본 승무원과 함께 세계를 누비며 수백억 달러의 딜을 성사시킨 대가였습니다.

이 책은 마치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처럼, 손정의를 떠났지만 여전히 그를 형이자 사부로 존경하는 저자가, 인간 손정의와 하이 스테이크 금융판의 매혹적이고도 기만적인 세계를 한 편의 잘 쓴 소설처럼 그려낸, 어지간한 추리 소설보다도 훨씬 흥미로운 비즈니스 논픽션입니다. 





<본문 발췌>


그날은 웨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세련되고 미니멀한 스시 나카자와에서 니케시가 저녁 식사를 주최하며 마무리되었다. 나카자와 씨는 전설적인 스시 장인 오노 지로의 제자로, 그의 이야기는 꼭 봐야 할 다큐멘터리 <지로는 스시를 꿈꾼다>의 주인공이다. 니케시의 수석 보좌관이자 구글 출신인 조너선 "JB" 불록도 저녁 식사에 합류했다. 케임브리지 대 학 출신으로 말이 적은 영국인인 JB는 니케시에게 당장 질문을 받았다.


"JB, 어떻게 생각해? 알록이 공항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까?" 그가 물었다.


공항 테스트가 대체 뭐야? 미리 알았더라면 준비했을 텐데. 세르게이 브린이 고안한 개념인데, 구글에 채용되려면 동료들이 공항에서 함께 발이 묶였을 때 몇 시간 동안 함 께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흥미로운 인물이어야 한다는 거야. 월스트리트는 평면적 이었고, 예리함과 야망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구글은 더 많은 걸 원했지. 나는 이 철학이 마 음에 들었고, 소프트뱅크 팀을 구성할 때 이를 적극 수용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인재 중 한 명은 케냐 출신으로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로즈 장학생이었던 슈 냐타였 다. 그는 J.P. 모건에서 테크 뱅커로 일했지만, 동시에 미국에서 가장 힙한 소울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모건 스탠리에서는 평생 만나볼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두뇌들 사이에서 일했다. 이런 프로 스프린터들과 10년 넘게 함께 훈련했음에도, 니케시와 회의할 때는 칼 루이스와 트랙에 선 기분이었다. 그의 분석력은 복권에 당첨되거나 연간 5천만 달러 이상을 주고 빌려야만 얻을 수 있는 종류였다. 나처럼 그 역시 바보들을 참지 못하는 본능적인 성향을 지녔지만, 대처 방식은 달랐다. 나는 가끔 아이러니를 즐기며 조용히 삐져 있었지만, 니케쉬 앞에서는 준비 없이 나타나면 창밖으로 내던져지는 게 운명이었다.


회의 후, 나이케시는 클리어리 파크 애비뉴 사무실에 있던 우리에게 드림웍스 애니 메이션을 34억 달러에 인수하는 조건을 협상하는 통화를 함께 듣자고 요청했다.2 원래 드림웍스는 미디어계의 성삼위일체인 스티븐 스필버그, 당시 디즈니 스튜디오 회장 제 프리 카첸버그, 그리고 디즈니 스튜디오 전 회장 제프리 카첸버그, 그리고 아실럼, 레코드사 설립자 데이비드 게펜. 카첸버그가 이끄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 션 콘텐츠에 집중하기 위해 분사되어 상장 기업이 되었으며, 가장 큰 히트작은 슈렉 시리즈였다.


통화 직후, 나이케시는 나를 불러 다섯번가와 55번가 모퉁이에 있는 페닌슐라 호텔 까지 서쪽으로 잠시 산책하자고 했다. 페닌슐라 호텔을 좋아했던 만큼(훌륭한 서비스, 활기 넘치는 테라스 바, 유리로 둘러싸인 실내 수영장) 나는 위압적인 고딕 양식 외관을 장식한 석상들과는 전혀 무관한 불안감을 안고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이곳 에 머문 건 2001년 9월이었다. 운명적인 일정 변경이 없었다면, 나는 9월 11일 오전 9시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회의 중이었을 것이다. 나는 3주간 페닌슐라에 발이 묶여 있었다. 충격에 휩싸인 채 런던에 있는 가족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났고, 영국항공의 대기 상태에 갇혀 그들의 테마곡인 라크메의 '꽃의 듀엣'을 끊임없이 들어야 했다. 아름 다운 선율이지만 나는 라크메를 싫어한다. 많은 인도인들처럼, 나는 우리 문화의 무분별 한 차용(애슈턴 커처가 터번을 두른 시크교도 풍자처럼)에 대해 관대한 어리둥절함을 보인다. 우리는 지적·문화적 우월감에 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델리브가 < 라크메>에서 그랬듯, 식민지 영국 장교들이 젊은 브라만 처녀들을 유혹하는 것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것은 내게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내 존재의 경계를 침법당하는 불쾌감을 일으켰다. 


우리는 레전더리 픽처스의 창립자 토마스 툴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레전더리 픽처스(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인셉션, 행오버 제작사)의 창립자이자 억만장자의 필수품인 스포츠 팀(그의 경우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공동 소유주인 토마스 툴.

"꽃의 듀엣"이라는 곡의 달콤한 선율이 귀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는 니케시를 따 라 5번가를 내려다보는 토머스의 호화로운 스위트룸으로 들어섰다. 그는 우리를 싸구려 천으로 덮인 소파에 앉으라고 권했고, 자신은 우리 맞은편에 놓인 튼튼한 가죽 안락의자 에 편안히 자리를 잡았다. 토마스(40대, 호감 가는 터프가이 체격)는 소프트뱅크와의 거래에 열의를 보였고, 니케시가 드림웍스를 인수한다고 알리자 더욱 그러했다. 니케시가 협상을 주도했고 나는 가끔 끼어들었다. 한 시간 만에 우리는 소프트뱅크는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에 2억 5천만 달러를 투자하고 아시아에서 레전더 리의 콘텐츠를 활용하기 위한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소프트뱅크의 전형적인 거래 구조였다. 미국 기술·미디어 기업에 소수 지분을 투자하면서 동시에 일본 및 아시아 전역에서 피투자 기업의 지적재산을 활용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마사(마사유키)는 2000년 초부터 이를 "타임머신 경영" 전략이라 설명했는데, "미국 벤처캐피털 사업을 통해 발굴한 우수한 비즈니스 모델을 글로벌 시장에 확산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개념이었다. 이는 소프트뱅크의 야후! 투자 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야후!와 소프트뱅크 간 일본 합작회사 설립이 동반되었다. 결 국 상장 기업이 된 야후! 재팬은 미국 모기업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다음은 인도 핀테크 스타트업 페이텀(Paytm)의 창립자 비제이 셰카르 샤르마와의 점심 약속이었다. 장소는 콜럼버스 서클에 위치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35층의 스카이 로비로, 북동쪽을 향한 센트럴 파크 전망이 장관을 이루는 배경이었다. 친절하고 진지한 비제이는 아로라 식 대우를 받았고, 은행가들보다 나을 게 없었습니다. 그의 결제 사업 이 더 넓은 금융 서비스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를 설득하지 못했죠. 비제 이가 안쓰러웠습니다. 채식주의자인 그에게 라운지 메뉴 중 먹을 만한 것(감자튀김과 크로켓)은 감자로 만든 것뿐이었으니까요. 우리는 거래를 거절했습니다. (4년 후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페이텀에 100억 달러 가치로 투자했다. 비제이는 억만장자가 되어 더 이상 자본이나 동정심이 필요하지 않았다. 비제이와 내가 다시 연락했을 때, 우리는 나이케시, 놓친 기회, 그리고 감자에 대해 추억을 나눴다.)


그날 오후 우리는 세븐스 애비뉴에 위치한 레인 그룹 사무실에서 드라이브스루 방 식으로 인수합병을 진행했다. 글로벌 시청자에게 연속 한국 드라마를 제공하는 스트리 밍 서비스 '드라마피버'6였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오징어 게임', '기생충')는 흥미롭다. 국가가 후원하는 어떤 노력도, 심지어 틱톡이나 페이스북의 마인드 해커 들을 동원한 것조차도 대중문화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 대중의 인식을 조작하는 데 맞설 수 없다. 왜 영화 제작 산업이 활발한 인도는 이를 그렇게 처참하게 실패했을까?


이제야 사미르가 말하려던 걸 이해했다. 맨해튼 시내를 산책하듯 걸으며 상당한 돈을 쏟아부었는데,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게다가 우리는 이제 배트맨의 일부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힘을 실어주고 매우 멋지지만 동시에 우려스러웠다. 사소해 보일 지 모르지만, 2008년 금융 위기에서 내가 얻은 교훈—개인적이자 거시적인—은 위험의 절대적 수준이 항상 중요하지만, 위험이 축적되는 속도가 시스템적 위험을 더 잘 예측한다는 점이다.


당시 마사는 통신 전략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는 스마트폰 혁명을 타고 인수합병을 연쇄적으로 진행해 글로벌 통신 사업을 구축하고자 했으나, 이는 보다폰 등 다른 기업 들이 시도했지만 실패한 전략이었다. 휴대폰 조달 등에서 명백한 규모의 경제가 존재했 음에도 불구하고, 규제 체제와 기술의 차이로 인해 이 글로벌 통신 비전은 실현하기 어려웠다. 반면 나이케시는 통신 사업보다는 디지털 세계에서 활용 가능한 콘텐츠(드림웍스나 레전더리 같은)에 더 관심을 보였다. 구글 재직 시절 그는 넷플릭스 초창기 인수에 적극 찬성했었다. 탁월한 아이디어였다. 넷플릭스가 구글의 유튜브와 사용자 제작 콘텐츠를 결합했다면 궁극의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이 탄생했을 것이다.


나는 두 전략 모두 확신하지 못했다. 아무도 단순한 전송망이 되고 싶어 하진 않지만, 유통과 콘텐츠를 결합하는 것은 통신사와 그들의 보수적인 CEO들에게 어리석은 짓이 었다. AT&T의 타임워너 미디어 인수(마 벨과 벅스 버니가 한 방에 모인 셈)는 결국 AT&T 주주들에게 470억 달러의 가치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제14장 내게 맡겨-위워크 실패기


기술 기업은 언제 더 이상 기술 기업이 아닌가? 전구와 제너럴 일렉트릭도 한때는 첨단 기술이었다. 2017년이 되자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그 명칭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당연해 보였다. 구글의 검색 기술은 10년이 넘었고, 그 '달 착륙 프로젝트'들은 핵심 광고 사업에서 벗어난 일로 여겨졌다. 2012년 소셜 네트워크는 참신했지만, 그 유 용성조차 의문스러웠다. (2018년 1월, 구글과 페이스북 모두 S&P 500 지수에서 '통신' 부문으로 재분류되었다.) 반면 엔비디아는 그런 의문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회사명 '엔비디아'의 라틴어 어원(invidere)은 '부러워하며 바라보다'라는 뜻으로, 2023년 5월 테슬 라를 제치고 헤지펀드 매니저와 소매 온라인 트레이더들의 새로운 애정 대상이 되며 1 조달러클럽에 합류한 기업에 딱 맞는 이름이다.


엔비디아는 1993년 대만계 미국인 기업가 젠슨 황에 의해 설립되었다. 차분하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지만, 젠슨은 평범해 보였으며 그의 유일한 독특한 점은 그 상징적인 검은 가죽 바이커 재킷 뿐이었다.


엔비디아의 첫 성공 제품은 그래픽 처리 장치(GPU)였다. 초기 GPU 응용 분야는 주 로 게임에 집중되었다. 엔비디아 GPU 칩은 콜 오브 듀티의 몰입감 넘치는 폭발 장면과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생생한 충돌 장면을 선사했다.


GPU는 GPGPU(범용 GPU)로 진화하여 모든 유형의 컴퓨터 처리 능력을 기하급수적 으로 가속화했으며, 주로 이미지 형태의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머신러닝 애플리케 이션의 핵심 기반이 되었다. (예를 들어 초기 버전의 ChatGPT는 1만 개 이상의 엔 비디아 그래픽 프로세서로 구동되었으며, 이후 버전은 점점 더 많은 칩을 필요로하게 되었다.) 아마존 웹 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와 같은 하이퍼스케 일러(클라우드 컴퓨팅을 가능케 하는 대규모 데이터 센터)는 엔비디아가 설계한 1만 달 러짜리 암페어 A100(후속 H100) 칩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된 것이다. 2017년 초만 해도 엔비디아는 인텔이 PC 혁명을 가능하게 하고 시스코가 인터넷의 배관 역할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AI 경쟁을 주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인텔과 시스코,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시절 삽과 곡괭이를 만든 업체들처럼 엔비디아의 비즈니스 모델도 특정 기술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엔비디아의 성공은 오픈AI 의 ChatGPT가 구글의 제미니나 앤트로픽의 클로드보다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는지에 달려 있지 않았다. 엔비디아는 어떤 방식으로든 수익을 창출했다.


암(Arm)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투자계도 이를 이해했고, 엔비디아 주가를 그에 맞 게 평가했다. 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마사(Masa)는—이것은 챗GPT 열풍이 일기 5년 전의 일이었다—시장이 AI 기회를 과소평가하고 저평가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전력 을 다해 그 회사를 인수하고 싶었다. 막대한 가격표(통제 프리미엄을 포함해 800억 달러 에 육박하는 금액—7년 후 2조 달러 가치로 평가될 사업체에 대한)에도 불구하고 나는 열광했다. Arm에 대한 열정보다 더 큰 열정이었지. Arm과 달리 변혁이 필요하지 않았 다. 엔비디아는 향후 10년을 바꿀 혁신적 기술의 물결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내 가 그토록 존경하던, 진정 위대하고 억누를 수 없는 비전의 소유자 마사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마사는 우드사이드 자택에서 젠슨 황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안타깝게도 젠슨은 합병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버렸다. 인공지능 분야 리더십은 미국에게 전략적 중요성 을 지니고 있었기에 이로 인해 엔비디아는 이 세기 가장 중요한 미국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기관 간 협의체인  CFIUS(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는 외국 기업의 인수를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거대한 계획이 좌절되자 마사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그의 비전펀드는 2017년 초 엔비디아 지분을 소량(공개 의무 기준인 5% 미만) 확보했다. 이 주식은 마진 거래로 매입되었고, 불과 몇 달 만에 주가가 급등하며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33억 달러의 수익 을 창출했다.1만약 그가 수십 년에 걸친 트렌드에 베팅하는 기술 전문가답게 2023년까지 보유했다면, 비전 펀드의 수익은 20배 이상으로 변혁적이었을 것이며 이후 발생한 많은 손실을 상쇄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레버리지 펀드 구조의 역설이었다. 투자자에 게 자본을 재투자해야 한다는 압박이 단기적 사고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 몇 달 간은 오로지 자기 확신뿐이었고, 블룸버그가 "기이할 정도로 끈질긴 거래 열풍"이라 묘사한 꿈의 출발이었다.


또 하나의 3점슛을 성공시킨 후, 스테판 커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망상일지도 모르지만, 슛을 할 때마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2타이거 우즈도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마치 닉 라우스가 중요한 3피트 퍼트를 놓친 적이 없다고 인정하지 않던 방식처럼. 위대한 운동선수들은 자신만의 현실을 창조한다. 자기기만이 그들에게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힘을 준다. 투자자에게는 효과가 덜한 기법이다.



왜 그의 이름이 허먼 나룰라인가? 위키백과 페이지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가 자랑스럽 게 사용하던 펀자브어 이름은 하핀더 싱 나룰라였다. 어릴 적 나는 이름에 싱이 들어간 친구들 모두에게 경외감을 느꼈다. '사자'를 뜻하는 이 이름은 말 위에 터번을 두르고 키르판이라 불리는 반짝이는 칼을 휘두르는 전사들을 연상시킨다. 허-먼은 어쩌면 하르민 더 싱 나룰라로 태어났을까? 그렇다면 왜 그토록 화려하고 왕족 같은 이국적인 이름을 고집했을까? 나도 그런 거대한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이 젊은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에, 이런 무작위적인 의식의 흐름 을 적어본다.


2017년 4월 어느 금요일 오후, 나는 그로브너 가에 위치한 조지아 양식 타운하우스 의 1층 회의실에 있었다. 이곳은 소프트뱅크의 런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지난 몇 달간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세 가지 상태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비전 펀드 관 련해서는 공식적으로 죽은 상태였지만, 비전 펀드 거래에 대한 의견을 자발적으로 제시 하라는 요청을 받을 때는 비공식적으로 살아 있었고, 비전 펀드 외 자산을 관리할 때는 공식적으로 살아 있었다. 허먼(까만 눈동자에 까만 머리, 수염이 자란 모습)이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밀레 니얼 세대 스타트업 창업자 치고는 특이하게도 검은 정장에 흰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아 마나를 위해 그런걸까?


그는 자신감 넘쳤고, 생각만큼이나 빠르게 말하는 성가시게도 인상적인 유형이었 다. 허먼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 학위를 받았고, 그의 벤처 자금은 안드레 센 호로위츠에서 나왔는데, 이는 그의 탁월함을 뒷받침하는 무시무시한 혈통이었다. 그 는 자신의 사업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비디오 게임, 방위 기관, 메타버스 환경을 위한 가상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회사 제품 은 '스페이셜OS(SpatialOS)'라 불렸는데, 분산형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이었다. 나는 그 게 무슨 뜻인지 대충 알았지만, 회사 수익 모델에 대해 묻자 허먼은 무지한 베이비붐 세 대를 마주한 밀레니얼 창업자들이 흔히 보이는 그 얕보는 눈빛을 날렸다. 아마도 그는 내가 고민하던 것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것이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 야, 친구?


허먼의 스타트업은 적절하게도 '임프로브- able이라고 불렸다. 라지브 미스라는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으나 늦었다. 그는 맨발로 회의실에 들이닥 친 뒤 테이블 가장자리에서 멈춰 서서 허먼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고개를 돌려 나를 바 라보고는 다시 돌아서서


몇 번 더 반복하며, 마치 탁구 경기를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그의 얼굴에 번뜩이 는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다.


"알록, 이 사람 네 아들 닮았어!" 그가 선언했다. 마치 복싱 경기 승자를 발표하는 심 판의 극적인 어조로.


라지브는 그 남자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었고, 아마도 그가 사미르라고 생각했 을 수도 있다. 라지브는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웃음을 터뜨리면서 상 황을 더 악화시켰다. 허먼은 당황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내 행동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다. 특히 허먼이 실제로 내 아들 또래에다 잘생긴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과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는 이제 라지브에게 말을 걸었고, 라지브는 전자담배를 피우며 참을성 있게 듣고는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들을 이어갔다. 답변이 나올 때마다 그는 쥬울 기기에서 큰 숨을 내쉬며 깊은 '흠' 소 리를 냈다.

그날 저녁 늦게, 마야와 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방문한 맥스 레브친과 그의 아내 넬 리와 함께 아츠 클럽에서 저녁을 먹었다. 맥스는 내가 아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 그가 "가상 세계를 가능케 하는 분산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가 왜 성공적인 아이디어였는지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아니면 적어도 그게 무슨 뜻인지라도?

클럽을 나서며 우리는 여전히 허먼과 그의 스페이셜OS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문 앞에서 도어맨이 택시를 불러주길 기다리던 중, 맥스는 결국 이해하지 못한다고 결 론 내렸다. "기술 실사를 해줄 사람을 꼭 구해야 해"라고 그가 말했다. 그때 바로 우리 앞 에 서 있던 젊은 남아시아계 남성이 돌아서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안녕, 알록." 그가 말했다.

허먼이었다.

맥스와 함께한 시간은 내 구원이 되었다. 한때 방갈로르의 한 핀테크 스타트업에 갔을 때 회의실에 맥스 이름을 붙인 걸 봤다. 밀레니얼 세대 코더들 사이에서 그가 그런 추 종자를 거느린 인물이었다. 허먼이 맥스를 숭배하듯 바라보는 동안, 나는 이게 현실인지 또 다른 시뮬레이션인지, 점점 익숙해지는 NPC 역할에 빠져드는 건 아닌지 생각하며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