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러다이트 클럽-탈온라인 한 미국 대학생들의 이야기 THE LUDDITE MANIFESTO by Logan Lane (Avery; September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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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자기들이 가장 똑똑한 줄 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뻔하게 보이는데 권력이 없기 때문에 말을 못할 뿐이다. 
로건 레인같은 스무살들이 한국에도 많이 있기를.
그리고 이들이 살아남고 건강하고 멍청이 어른들을 다 이길 만큼 강해지기를.
또 이들이 어른이 되면 너희들은 썩고 무능한 똥멍청이가 되었다며 이들을 비웃을 새로운 어린이들이 계속 한국에 태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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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립폰을 갖고 토스토예프스키를 읽고, 모임의 프로그램을 오직 종이로만 인쇄하여 나눠주고 공공도서관이나 숲에서 만나서 이야기하고 MP3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으며 최신 아이폰대신 노트북으로만 작업을 하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저자가 살고 있는 <러다이트 클럽> "오프라인일 때 나는 더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왜냐면 나는 살아있는 인간이고 당신도 살아있는 인간이니까요.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생명을 기술로 낭비해서는 안돼요. When I'm offline, I got more alive, she said. “Because I’m always like, ‘I’m alive. You’re alive. It’s beautiful. That’s why we shouldn’t be consuming life through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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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다이트 클럽 창시자 로건 레인과 브루클린 머로우 고등학교때 친구들: 최초의 러다이트 클럽 멤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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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딩때 뉴욕 타임즈지에 실렸던 저자와 저자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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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만든 러다이트 클럽 회원 모집 포스터>
                       

원제명: 러다이트 클럽 THE LUDDITE MANIFESTO

원저자명: 로건 레인 Logan Lane

원서출간년도: 2027년 가을 펭귄 Avery


로건 레인은 뉴욕 브루클린 머로우 고등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여학생으로 15세에 코비드를 겪으며, 인터넷으로만 사람을 만나고 인스타그램에 프로필 사진을 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신이 싫어져서 동네 도서관에서 사람들과 러다이트 클럽을 몇년전 시작했습니다.  

이 클럽에서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구식 핸드폰을 쓰며 앱 대신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대화하고 시를 읽거나 그림을 그리고, 숲 속이나 공원에서 같이 산책을 하는 것이 규칙입니다. 그녀는 처음에 그냥 혼자 도서관에 가서 종이로 만든 <멤버 모집> 공고문을 붙였다고 합니다. 누군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 공고문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공고문을 보고 찾아온 또다른 인스타 경쟁에 지친 여학생과 처음 러다이트 클럽을 시작했고, 점점 사람이 많아져  뉴욕타임즈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기사가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팬픽을 그려서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기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지 문의해오는 메일들이 메일함을 가득 채웠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즈지의 기자는 몇 년 후 다시 그녀를 인터뷰하게 되었고, 그것이 지난주에 뉴욕타임즈에 실렸습니다. (https://www.nytimes.com/2022/12/15/style/teens-social-media.html?smid=url-share)


알고보니 저자는 지금 대학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며 아직도 러다이트식 삶을 유지하고 있으며, 고등학교때 시작한 클럽을 미국 전역으로 확장하여 비영리단체로 만들어서 운영 중이었습니다. 미국 대학 곳곳에 이처럼 온라인 라이프가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 것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탈온라인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들의 클럽이 필라델피아 워싱턴 등등 각 대학 내에 점점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술은 좋은 것이지만, 인간 간의 대화와 접촉, 깊이있는 사고를 막을 정도로 기술이 우리를 지배하게 내버려둬서는 안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더 이상 소셜미디어에 올릴 거품 낀 자신의 모습을 만들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거나 각종 정신 문제를 갖게 된 젊은이들에게 허상의 세계에서 나올 수 있게, 현실 속에서 진실한 대화와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을 사회적 운동으로 확대시키고 있는 저자 로건 레인의 클럽에서 시작된 이 운동으로 인해 각 러다이트 클럽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마트에서 저가플립폰을 사고, 종이소식지를 만들어 온라인에 올리던 트윗들을 굳이 종이로 인쇄하여 돌려보고 있습니다. 이 클럽들은 그 어떤 기업이나 특정 어른들의 정책 등을 따르지 않는 자발적인 학생 주도 모임들로, 순수 비영리모임들입니다. 


저자의 흥미로운 이력과 라이프스타일이 책으로 나오게 된 이유는 저자가 오프라인 라이프를 선택했을 때 저자의 가장 큰 인간관계의 공백을 메꾸게 해준 것이 바로 "책" 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직 러다이트 클럽이 없는 곳에 있을 자기 또래 십대 이십대들을 위해 "책"의 형태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입에서, 저자는 유럽에서 <쌍 에크랑Sans Ecran> (공공장소에서 스마트폰 사용금지법령을 주창했던 프랑스 빠리의 한 지역) 을 방문하고 기술 문명에 대한 사람들의 상반된 반응을 관찰합니다. 디지털은 우리의 권리이냐 아니면 인간본연의 생명의 박탈이냐? 빠리 시민들은 이것을 놓고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시장 니가 뭔데 공공장소에서 핸드폰을 못 쓰게 하냐'고 따지는 사람과 '드디어 밥 먹을 때 아기들에게 핸드폰을 쥐어주는 엄마들을 안봐도 된다'고 안심하고, '핸드폰하며 운전해서 차에 치이지 않게 돼서 좋다'고 말하는 프랑스 시민들- 저자는 그 상반된 반응을 관찰하며 일종의 고백록과도 같은 느낌으로 제일 처음 혼자만 오프라인을 선택하여 모든 인간관계와 단절되었을 때 느꼈던 엄청난 단절감과 세상으로부터 혼자만 소외된 것 같았던 그 감정을 나눕니다. 

오프라인이 중심인 생활을 잘 몰랐던 15살 디지털 네이티브의 관점에서 세상을 핸드폰없이 새롭게 탐색했던 그녀에게 사람들은 "아니 스마트폰없이 어떻게 대학을 다녀? 과제는? 팀프로젝트는?"등의 질문을 던졌고, "고등학교 때에나 가능한 삶의 방식이 아닌가?"하며 의구심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녀는 실제로 대학생이면서 러다이트로 사는 것의 어려움과 그녀가 부딪힌 현실 등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기술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일상의,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관점과 시간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선택한 러다이트 라이프스타일처럼 좋은 것이 없다고 말하며, 다른 디지털 네이티브 친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선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녀는 미국 내 각 도시에서 번지고 있는 이러한 러다이트 운동을 직접 발로 뛰며 관찰하였고, 그녀와 그녀 친구들의 러다이트 여정을 이 책에서 보여줍니다. 

<구조>

책은 

1) 나는 왜 탈온라인을 했나, 그것을 했을 때 무엇을 잃었다가 되찾았고, 무엇을 새롭게 알게 되고 하게 되었는가? 
2)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는 청년들이 있다면 어떻게 탈 온라인을 할 수 있을까?

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탈온라인후 되찾은 것


- 내 시간(Time): 오프라인 후 실제로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과 다운타임을 구분하게 되었다 - 다운타임에 나는 요리,  독서와 일기쓰기, 산책을 시작하게 되었다.
- 집중력(Attention)
- 자기결정력(Agency)
- 나자신(Self)

새롭게 찾은 것
- 챕터 요약 샘플  번역

자기 결정력:
습관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연습하라. 그리고 습관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은 연습하지 말고, 대신 다른 것을 습관으로 만들라.”

- 에피쿠테투스,《사물의 외관과 본질을 구분하는 방법》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자유로운 오후에는 레드 후크 중학교에서 MTA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근처 스타벅스에 앉아 카라멜 프라푸치노와 데운 초콜릿 칩 쿠키를 먹었다. 그곳에서 나는 나이 많은 인터넷 인플루언서들의 저급한 팟캐스트를 들으며 진짜 친구들이 있는 것처럼 느끼고, 12살의 내가 살 수 없는 옷을 온라인으로 쇼핑하며 오후를 보냈다. 당시 내가 알고 있던 유일한 방과 후 휴식 방식이었다. 사실, 나는 소비 문화가 자기 관리로 위장된 것에 의해 상품화되고 있다는 것을 잘 몰랐다. 유튜브 옷 구매 영상과 내가 숭배하던 훨씬 나이 많은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행복은 소비, 브랜드 협업, 인터넷 유명세에서 오는 것이라고 배우며 살았다. 하지만 더욱 나쁜 것은 끊임없는 온라인 라이프를 통해 행복이 나 자신 밖의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다른 사람의 비즈니스 모델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학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단순히 시간과 집중력만 잃은 게 아니라 내 삶의 선택의 자유를 잃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인터넷이 정보의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배웠다. 우리는 동남아시아에 사는 개 종의 수나 사하라 사막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 종류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자나 동부 해안의 엘리트가 되어 방대한 도서관에 직접 가보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디지털세계가 우리의 자기 결정력(Agency)에 작용하는 기제를 깊이 알고보면 온라인 플랫폼의 설계 방식 때문에, 더이상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우리는 한순간도 방해받거나 조작당하지 않고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따라서 많은 경우 디지털 월드가  제공하는 실제 자유는 공허한 것이다. — 많은 경우 디지털 월드의 자유란 영리 기업들이 우리의 집중력을 수익화하고 제품을 사도록 강요하기 위한 위장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표는 우리가 소비하는 컨텐츠와 그것의 빈도수를 더욱 줄여서 예측 가능하고 일률적인 소비자로 우리를 통합하는 것이다.  예측가능성은 평화로운 마음챙김 콘텐츠든, 식이장애를 조장하는 콘텐츠든 상관이 없다. 모든 것에 알고리즘이 존재한다. 우리의 취향이나 욕구는 로봇처럼 평준화되어서 우리는 더더욱 체중 감량 약이나 발기부전 약을 사기 쉬운 존재로 바뀌고 있다. 로봇 같은 바보인간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복잡한 개인에게 파는 것보다 쉽다. 이것이 과장된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플랫폼과 기기를 만든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 페이스북 최고 운영 책임자(COO)인 Sean Parker는 페이스북이 “인간 심리학의 취약점을 악용한다”고 인정했으며, 그의 동료 Chamath Palihapitiya는 “우리가 창조한 단기적 도파민 중심의 피드백 루프는 사회가 기능하는 방식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무의미하게 스크롤을 내릴 때, 우리는 감정적, 지적, 시간적, 소비자로서의 자율성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콘텐츠와 상호작용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소비하는 것에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스크롤을 내리다가 지루해지면 동영상을 닫고, 좋아요를 누르고, 친구에게 보내는 것 등 이러한 행동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다음 올라올 컨텐츠 영상에 우리가 정신적으로 얽매일 수록 우리가 정말로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고 우리를 더 쉽게 판매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뿐이다. 


이 장에서는 인터넷의 정보 자유 약속, 그것이 필연적으로 자율성을 박탈하는 블랙홀로 역전되는 과정, 그리고 내가 마비되고 자율성을 박탈당한 경험을 깊이 있게 써볼 것이다. 나는 전직 실리콘 밸리 양심적 반대자들과 벤 엘튼의《Blind Faith》라는 영국 디스토피아 소설의 저자를 인용할 것이다. 이 소설은 성에 집착하는 이기적인 문화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 ‘마찰(Friction)’ 장에서 다룰 내용에 대한 언급으로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이 장에서는 우리와 우리를 자율성에서 벗어나는 기술 사이에 경계를 세우는 방법을 탐구하여 일상적인 선택의 통제권을 되찾는 방법을 논의할 것이다. 


제2부: 새롭게 얻은 것

공동체(Community), 물리적인 실제 세상(Physical World),  나 자신에 대한 정의 (Sense of Self), 마찰(Friction-AI 의 광범한 도입을 목전에 둔 나는 인간으로써 온라인에 의한 내 삶의 침범을 막기 위해 기꺼이 세상과 불화하며 마찰을 일으키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쓰고 있다. 그 예시들)


번역 예시:

공동체


“오늘날 젊은이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분명히 여러가지 할 일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용감한 일은 고독이라는 끔찍한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안정된 공동체를 창조하는 것이다.”

― 커트 보네거트, Palm Sunday: An Autobiographical Collage


오벌린 대학 2학년 봄, 촛불이 켜진 러다이트 클럽에서, 대학 신입생이며 나의 러다이트 사도이자 뮤즈인 닉 쿠퍼가 필립 라킨의 시 High Windows를 낭송했다. 이 시는 노화, 성적 해방, 존재의 공허함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나는 닉에 이어 로버트 퍼트넘의 《Bowling Alone》 서문을 읽었다. 이 책은 닉슨 행정부 이후 미국에서 공동체의 쇠퇴를 다룬 퍼트넘의 학위 논문이자 평생 연구로, 우리 대학에서 진정한 공동체 부활에 관심을 가진 청중에게 읽기 적합한 내용이었다.

우리가 2022년에 러다이트 클럽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히 다른 루드이트 청소년을 찾고 싶어서만이 아니었다. 우리 고등학교에서 코로나19 이후 청소년들에게 나타난 영향—점점 더 고립되고 우울하며 불안하고 화면에 의존하는 학생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 추세를 바꾸고 싶었다. 모임을 시작했을 때, 우리의 노력이 성공할지, 기술 퇴보에 헌신한 소규모 오프라인 커뮤니티에 관심이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회원들의 피드백을 통해, 커뮤니티의 전통적인 혜택—더 깊은 사회적 연결, 소속감, 학습 기회—을 넘어 상호 책임 네트워크로 발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원들은 서로 기술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 했기 때문에, 모임 사이의 매주 개인적인 목표에 열심히 노력했다. 이는 전국의 러다이트 클럽에서 목격한 이 약속이 커뮤니티 자체의 약속과 일치하기 때문이다.—즉, 우리는 자신이 믿는 더 큰 것의 일부이기 때문에 서로 돕겠다는 것, 그리고 나중에 당신이나 다른 누군가가 나를 도울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 책도 이를 모델로 삼을 것이다. G.P 퍼트냄은  이 현상을 '황금률'이라고 명명했다. 즉, 개인은 커뮤니티가 자신을 돕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커뮤니티를 돕는 의무를 느낀다는 의미이다.

퍼트냄은 책에서 1970년대 이후 로타리 클럽, PTA, NAACP 지부 등 커뮤니티 단체들이 안일한 관찰자, 개인주의자, 고독한 존재로 변모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인터넷이 거의 모든 가정에 안착하지 않았던  20세기 후반의 이야기이다. 이 변화 이전에 이 쇠퇴와 연결된 주요 기술은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대부분 혼자서 하는 행위였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미국인의 거의 모든 가정에 자리잡았을 때  들어갔을 때 그리고 단순히 방송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맞춤형으로, 중독성 있는 콘텐츠를 제공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을 때—공동체의 중요성은 더욱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 쇠퇴는 중요하다. 우리는 학교나 일에 강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닌 의도적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속적으로 모여서 시간을 보내면 장기적인 성장, 상호 지원, 그리고 공동체 자부심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를 돕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돕는 것이다. 더욱이, 인간에게는  대면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이는 우리 인구 통계학적 배경, 실제 얼굴 표정, 그리고 참석할 수 있는 물리적 장소와 연결시켜주기 때문이다.  물리적 물체처럼, 우리는 실제 커뮤니티와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왜냐하면 공동체는 스크린이 아닌 물리적 존재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며, 온라인에서 상호작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우리와 정확히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맺기를 배우는 곳이다. 커뮤니티 구성원과의 관계에 시간, 주의력, 배려를 투자할 때, 우리는 장기적인 상호 성장에 투자하며 신뢰와 사회적 자본을 쌓게 된다. 이는 시민 참여, 협업, 집단적 책임감에서 비롯된 공유된 혜택을 의미한다. 

우리는 브루클린의 러다이트들로서 지난 4년간 매주 러다이트 클럽에 참석해 왔다. 우리는 클럽을 비영리 단체로 등록하기 위해 서류 작업과 IRS 기술적 세부 사항에 수백 시간을 투자했다. 이는 클럽이 우리에게 도움을 준 것처럼 다른 젊은이들을 돕기 위해서이다. 그러는 과정중에 다른 도시에 있는 연구자, 기자, 그리고 단순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러다이트들과 수백 통의 전화를 받았고  또한 우리는 단체명앞으로 받은 수십 통의 손편지 중 거의 모든 편지에 답변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하면서 단 한 푼도 벌지 않았다. 사실, 인터뷰어나 연구자들에게 일반적인 질문에 답변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싫어하는 시간 낭비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는 커뮤니티를 믿기 때문에, 고립된 전국의 러다이트들, 끈질긴 연구자들과 기자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전국적 운동에 참여하거나 지원하는 클럽 회원들을 믿기 때문에 이를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각 편지를 봉인하고 우표를 붙이거나, 전화를 끊을 때마다 그렇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으로서(특히 커뮤니티에 투자한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을 다른 공동체들이  도왔기 때문이다—격려의 말과 우편을 통해 받은 비영리 기부금, 자신들의 클럽을 시작하려는 그들의 주도성, 또는 커뮤니티를 우리만큼 믿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제공한 일자리 제안(이 책 계약도 포함)을 통해 말이다. 

이 장에서는 러다이트 클럽이 저에게 가르쳐준 공동체에 대한 교훈, 그 쇠퇴 과정에서 우리가 잃은 것, 왜 이를 부활시키는 것이 필수적인지, 그리고 로버트 퍼트넘 같은 공동체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공동체 건설에 대한 내용을 이 장에서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