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아침아이 MORNING CHILD by Sanaë Lemoine (River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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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사나에 르무완>



원제명: MORNING CHILD: A Novel

원저자명: Sanaë Lemoine

원서출판사명: 펭귄 리버헤드Riverhead


2027년 6월출간예정-하드커버 27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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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즈 사강' 같은 일본계 미국 작가가 쓰는 가족, 정체성 그리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탐구


안녕하세요? 알렉스리 에이전시의 이주연입니다. 오늘은 내년에 펭귄에서 나올 아주 섬세한 문학 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저자는 일본인으로 스위스, 프랑스, 남미등  부친을 따라 여러 나라를 다닌 독특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문예 창작과를 나오고 요리책, 그리고 첫 소설 <마고의 연애사건>을 출간한 미국작가라기보다는 프랑스+일본 소설가에 가까운 소설가입니다.



<줄거리>


소설은 1983년을 배경으로 하며, 아사코(Morning Child), 미국명 ‘아사’로 불리는, 대사관에서 일어를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는 삼십 대 중반의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우연히 아르헨티나 대사관 파티에서 마리셀이라는 사십 대 중반의 여자를 만나게 된 그녀는 마리셀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마리셀은 화가인 동생 줄리아의 개인전이 열리는 도쿄에 따라 놀러 왔고, 두 사람은 대사관 문화 행사에서 서로 한눈에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아사코는 오모테산도 파티스리의 숏브레드에 흠뻑 빠진 마리셀과 차를 마시며 그녀의 비범한 인생 스토리를 듣게 됩니다. 평화롭고 세련된 그녀의 겉모습과 달리, 1976년 독재 정권에 항의하는 운동을 했던 남편 에두가 감옥에 갇혔다가 실종된 지 8년째이고, 마리셀 자신도 6년간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지 몇 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혼자 딸을 기르며, 소설가이자 에두의 동생인 마일로와 가까이 살면서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 중인 그녀는 대단히 강인한 여성입니다. 그녀는 “너는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보물인걸!” 하며 아사를 자신의 집으로 초청하고, 아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그녀의 집과 인간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좁고 격식에 맞는 인간관계 예법을 지켜야 하는 일본 사회에서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 살아가던 아사는 그녀의 진심 어린 환대에 치유받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아사가 온다며 모든 침대의 베딩을 손수 다림질했다는 마리셀의 넓고 커다란 집,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식당들은 군부 독재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온기 넘치는 곳입니다. 


아사는 언제나 일본인이면서 일본인스럽지 못하다고 일본에 살 때 사귀었던 이사무라는 남친의 부모에게 거부당했고, 언니 역시 귀국했을 때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했으면서도 부모에게 말을 못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본 내부의 잔인하고 이중적인 문화를 자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견뎌내고 성인이 되었는데, 언니는 클리닉이라는 화장품 브랜드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를 지닌 일본 최고 마케팅 부서장이 되어 자유분방하게 살고, 아사는 번역가로, 예술가로 소극적인 반항을 하지만, 일본에 돌아온 지 5년이나 되었는데도 결국 일본과 불화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한편 어린 시절 친구 나오코는 대학생 때 만났던 유부남인 히로시를 이혼시키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지만, 나오코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시부모와 히로시의 우울증 때문에 삶의 생기를 잃어버리고 둘만의 사랑마저 모두 식어버렸는데, 결국 히로시의 자살로 배 속에 둘째 아이를 임신한 채로 두 아이를 기르는 젊은 미망인이 되었습니다. 나오코는 아사에게 왜 자신이 남편의 자살 이유를 알리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그녀와 연락을 갑자기 단절해버렸는지에 대해서 한참 후에 편지로 알려옵니다. 자신이 이혼시켰던 히로시의 전 부인의 마음은 어땠을까? 히로시는 이렇게 이혼 후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지만, 어릴 때 했던 잘못된 선택을 꿋꿋이 책임지고 있던 나오코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바로 털어놓을 수가 없어서 그녀를 떠났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사는 마리셀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해, 여성성, 결혼, 출산에 대한 선택, 그리고 남편/남자에 대한 태도에서 일본에서 아사의 주변에 있던 여성들과는 전혀 다른 마리셀과 그녀의 주변인들의 삶을 보면서, 자신의 이방인적인 성격(일본인이지만 일본인이 될 수 없는)을 점차로 긍정하게 됩니다. 


마리셀은 남편을 찾아준다는 기자의 거짓말에 속아 그 여기자가 탐냈던 자신의 비싼 스웨터를 그 자리에서 벗어주고, 연락도 없는 그 양심 없는 기자를 다른 회견장에서 만났을 때 그녀가 자신에게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지 알 수 없어 합니다. 또, 남편을 기다리면서 시동생인 마일로와 애매한 관계를 계속 갖고 고독을 해소합니다. 마리셀 역시 군부 독재의 최상층에 있었던 남편 에두의 부모님의 위선과, 다른 국민들이야 굶든 맞든 자기들끼리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의 극치를 마주합니다. 그들은 부모와는 결이 달랐던 에두가 반체제 데모를 하다가 군부에 의해 실종사했다는 것 자체를 부인하고, 아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단지 자신들이 반대했던 마리셀이 싫증나서 딴 데로 도망가버린 것 아니냐고 생각하며, 자신들의 인맥을 동원해 실종된 아들을 찾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이기심의 시부모가 있고, 독재 정부의 탄압에서 벗어나 새로운 민주적 지도자가 갓 선출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갑자기 평화로운 사회처럼 보이지만, 마리셀과 그녀의 딸, 마리셀의 여동생이자 화가인 카밀라는 예술을 통해, 또 아이를 낳고 기르며, 남편이 있거나 없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각자의 길을 모색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아사는 용감하게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선택의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리셀의 삶을 보면서 자신도 그렇게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안정된 일본의 체제에 거짓으로 순응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용기를 마리셀과의 우정에서 얻은 것입니다. 


아사는 일본어로 아사코, 즉 ‘아침에 태어난 아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쓸 것인지, 일본의 기숙사 학교 친구들과 엄마, 아빠, 언니가 불러준 ‘아사짱’이라는 이름을 쓸지, 외국인들이 불러주는 ‘아사’라는 줄임말 이름을 쓸 것인지, 자신이 정말 원했던 스페인 작가의 소설 번역 작업을 하면서 결정해야 합니다. 


언니 게이코는 결국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 아들 토미오를 기르다가 부모에게 아예 입양시켜버리고, 아사랑 도쿄의 아파트에서 같이 삽니다. 두 딸의 인생이 평탄하게 흘러가지 않는 데 대해 말 못 할 자책감이 있던 아사의 부모는 오히려 토미오로 인해 다시 희망을 찾는 듯 보입니다. 언제나 씩씩하고 잘난 언니인 줄로만 알았던 게이코는 외국에서 돌아온 아사와 같이 살면서 어릴 때 당했던 이지메 이야기를 동생에게 처음으로 털어놓습니다. “내가 강하지 못하면 너도 당할까 봐…”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말해놓고, 두 자매는 각자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인정해주기 시작합니다. 


언니가 준 파란 실크탑을 입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마리셀의 집에 갔던 아사는 마리셀의 시동생 마일로와 가까워지고, 결국 마일로는 “너는 내가 세상에서 태어나서 본 중 가장 예쁜 여자야”라는 말을 하고, 둘은 짧은 사랑을 하게 됩니다. 일본 대사관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프랑스로 돌아가서 소설 번역가로 다시 살려고 생각하게 된 아사는, 자신이 마일로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면 그가 같이 가주거나 결혼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마일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사는 어쨌든 아들일 그 아이를 혼자 키우기로 결심하고 파리로 갑니다.
평생 이중적이고 보수적인 대사관과 일본 문화의 예법을 엄격하게 가르쳤던 아사의 어머니는, 아사가 마일로의 아이를 임신할 무렵 엉뚱한 선언을 합니다. “아사,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라고. 


두 딸이 전혀 엘리트 일본인 여성의 삶을 살지 못했어도 아무튼 삶을 그냥 받아들이고 살 수밖에 없다고, 나이 든 어머니는 전혀 기대하지 못한 선언을 아사에게 하고, 아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 듯한 감정을 느낍니다.



<소설의 특성>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일본어, 영어 사이의 언어의 뉘앙스 차이처럼 미묘한 문화적 차이 속에서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모색하고, 발견하는 아사의 이야기는, 동양적 가치와 서양의 사고방식, 영어와 한국어가 서로 미치는 영향 속에서 혼란을 겪는 동시에 제3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현대의 한국 독자들에게도 많은 울림을 줄 수 있는, 부드럽지만 아주 깊이 있는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미국 문학계의 신예 스타: 사나에 르무완은 케이티 기타무라나 시그리드 누네즈 같은 감각적인 신예 소설가로 미국 문단에서 핫한 젊은 저자입니다. 문체는 사강처럼 뭔가 관능적이면서도 부드러움과 세련됨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사소설 같은 인티머시를 갖춘 동양적인 서사: 저자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20대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보낸 자신의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외국에 살면서 이방인으로서, 고국과 대사관 직원이라 끝없이 새로운 집 사이, 빌려 쓰고 한정적으로만 소유해야 하는 고급 사교계의 삶과 도쿄에서의 진짜 삶 사이의 괴리를 조화시키려 애써온 자신들의 이야기가, 언제나 ‘진짜 나’와 ‘남들에게 보여주는 나’ 사이의 괴리처럼 특히 내면적인 일본 사소설적 문체로 그려졌습니다.



<저자 소개>


사나에 르무완(Sanaë Lemoine)은 일본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프랑스와 호주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녀의 첫 소설 <마고의 연애사건 THE MARGOT AFFAIR>는 Hogarth US(2020), Sceptre UK, Eyrolles France, Phantom Press Russia 등에서 출간되었고, 뉴욕 타임스 선정 소설 중 하나였습니다. 그녀는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2022년 미국 국립예술기금(NEA) 창작 글쓰기 펠로우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녀의 글은 Harper’s, The Los Angeles Review of Books, Gagosian, Electric Lit 및 Lit Hub 등에 기고된 바 있습니다.



<샘플 번역: 아사의 어머니의 선언>


크리스마스 날 부모님을 찾아갔다. 몇 달 만에 본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거의 새하얗게 변해 있어 깜짝 놀랐다. 머리카락의 질감조차 마른 건초처럼 달라져 있었다. 


우리는 참으로 독특한 가족이었다. 나는 부모님 곁에서 어른으로서의 자리를 잡는 데 항상 어려움을 겪었다. 게이코와 나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어린아이 취급을 받았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 관계는 우리가 어렸을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게이코는 내게 더 심하게 굴며, 내 피부가 너무 건조한데 관리를 안 한다고 트집을 잡거나, 내가 만든 음식이 간이 너무 짜다고 불평하곤 했고, 나는 언니의 트집에 늘 부루퉁해서 침묵 속으로 숨어들곤 했다. 


몇 년 전 은퇴한 이후로 아버지는 가죽 안락의자에 앉아 텔레비전—주로 골프, 야구, 스모 경기—을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가끔 친구들을 만나러 갈때만  아파트를 나설 뿐이었다. 아버지는 원래 말수가 적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더욱 침묵을 지키게 되고, 짧은 문장이나 헛기침으로만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가장 시끄러우셨던 때는 저녁 식탁에서, 우리가 준비해 드린 음식을 후루룩 후루룩 먹으며 씹으실 때 뿐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쓸데없는 것에 돈을 낭비한다고 비난했지만, 사실은 언니가 낭비벽이 훨씬 더 심하다고 불만이었다. 게이코는 믿을 수 없는 남자와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하다가, 외모 관리할 시간도 없이 일만 하는 여자가 되어버렸다고 엄마는 한탄했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토미오가 나타날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은 환해졌다. 토미오에게만은 엄마는 어떤 비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쌀쌀맞고 냉정한 딸이었다. 엄마가 부엌일을 도와달라고 할 때면 참을 수가 없어서 화를 냈고, 엄마와 가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은 들었지만 어머니의 존재를 진심으로 감사히 여기거나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나는 침묵과 초조함 사이를 오가며,  엄마하고 있을 때면 대체 뭘 해야 할지 도무지 알지 못했다. 나는 어머니가 선물과 정성으로 가득 찬 여행 가방을 들고 오는 그런 어머니가 되기를 바랐고, 어머니가 영원히 그렇게 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절대 그런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고, 그런 기대를 더 많이 할수록 실망은 더 컸다. 나는 내 어머니의 사랑이 마리셀이 카밀라에게 베푸는 사랑과 같기를 바랐다-거침없고, 자식이라면 끔찍하게 지켜주는 한없이 다정한 엄마의 사랑 말이다. 


어느 날 저녁,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어머니는 부엌으로 나를 따로 불러내셨다. 그 직전에 어머니가 내가 설거지할 때 물을 얼마나 많이 쓰는지 언급하자, 나는 어머니에게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어서 어색한 상태였다. 


“생각해 봤어,” 어머니가 말했다. “넌 일본에 있을 때 항상 너무 긴장해 있잖아. 나도 똑같은 기분이니까 이해해.”

“무슨 뜻이에요?” 내가 한 발에서 다른 발로 무게를 옮기며 물었다. 어머니는 젖은 손을 주방 수건으로 닦았다.

“내 말은, 네가 평생 일본에서만 살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럼 어디로 가라는 거야?  직장이든 내 일이든 다 여기 있잖아. 계속 일본에서 난 살아가야 해.”

“아니, 그렇게 애쓰지 말고 그냥 네가 원하는 곳에서 살아. 꼭 일본에서만 살아야 하는 건 아니야. 그저 매 순간을 살아가면 돼.” 


우리 말의 차이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녀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 마리셀도 아마 어머니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넌 정말 아직 젊구나.”

그녀는 전에 나를 ‘젊다’고  한 적이 없었는데, 그녀가 나를 그렇게 본다는 사실에 놀랐다.

“일본에서 긴장된다면,  엄마는 왜 계속 일본에 사는 거야?” 내가 물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어머니는 일본 남자들에 대해 경고해 오셨다. 그들은 결코 책임을 지지 않고 대립을 피한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좋은 남자들은 모두 전쟁에서 죽었다고 했다. 옛 사진 속 어머니는 항상 기모노를 입고 계셨지만, 지금은 상황이 꼭 요구하지 않는 한 서양식 옷차림을 선호하시며 기모노를 거의 입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일본인 특유의 완벽을 추구하는 태도를 성가시게 여겼다. 그녀가 보기에 사소한 세부 사항이나 쓸모없는 형식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예를 들어 물건을 포장하는 방식에 지나치게 신경 쓰거나,  후딱 끝낼 수 있는 일을  사람들이 왜 그렇게 느릿느릿 처리하는지—을 싫어했다.  때로는 어머니에게서 급진적인 면모, 즉 어머니가 나와 케이코에게 물려준  ‘일본답지 않은’ 기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외모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옷을 손수 빨고, 먼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섬세한 옷들은 후로시키에 싸두며, 집안의 다른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화장을 했다. 그녀는 매일 아버지에게 밥을 차려 드리고 집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녀는 그 세대의 모든 어머니들과 닮아 있었을까? 슬리퍼를 신고, 주름 하나 없는 다림질된 앞치마를 두른 채 그녀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내 질문을 무시하고 대신 물었다. 


“아사짱, 네 꿈은 뭐야?” 그녀는 작은 검은 눈으로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는데, 홍채와 동공이 하나로 어우러져 보였다.


이 드문 공감의 표현에 마음이 움직여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적절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동시에 마치 그녀가 나를 위해 창문을 열어준 듯 어깨의 무거운 짐이 조금은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다시 설거지를 시작했다.  


물론, 문 밖으로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에, 나는 엄마에게 무뚝뚝하게 군 것에 후회스러워졌다. 난 엄마와 멀리 떨어져 있을 때만 언제나 엄마를 새삼 소중히 여기게 되는 딸이었다. 엄마도 마찬가지였을까? 엄마의  나에 대한  사랑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몇 시간 전만 해도 나를 짜증 나게 했던 것들이 이제는 묘한 그리움으로 내 마음을 채웠다. 평소 엄마와는 전혀 다른, 엄마답지 않은 모습에 대한  기억 덕분에, 나는 엄마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면서도 동시에 엄마 곁에 있는게 그토록 힘들었던 엄마 특유의 목소리와 신체적 특징 없이도 말이다. 내가 소유한 나만의 엄마의 이미지를 즐기면서 그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기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어머니가 무슨 충고를 하든 언제나 내 첫 반응은  마음을 닫고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이었지만, 결국에는 적대감을 덜고 어머니의 말씀으로 돌아가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가끔은 어머니께서 나를 아주 정확하게 꿰뚫어 보셨기 때문이다. 


그냥 살아가라, 아사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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