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 이성원

바른 믿음은 희유한 것이다

나는 종종 김밥집에 가서 김밥을 사먹는데 동네 분식집 허름한 곳에 자주 간다.

이유는 사장아줌마가 수랏간상궁님처럼 머리를 간결하게 하고 엄청 예쁜 외모의 육십대신데 김밥 야채비빔밥 떡볶이등을 엄청 빠르게 그러나 깨끗한 맛, 즉 집에서 한것 같은 맛이 나기때문이고 건물에 아동스포츠센터가 있어서 애들이 늘 올망졸망 와서 먹고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줌마는 불친절하다. 열고 닫는 것도 열시에서 5시정도로 하다가 자기 사정으로 쉰다는 쪽지도 여러번 붙어있을 정도고 그 흔한 알바하나 안 쓰고 혼자 다하며 가끔 개장수나 입을 법한 낡은 외투를 걸친 남편인 듯한 아저씨가 뭔가를 도울랑 말랑하는 성의없는 자세로 쌀포대 이십키로짜리나 안 씻은 야채들을 노란 장판으로 된 바닥옆에 쌓아주는 정도라 

애 엄마들이 애들 떡볶이 김밥등을 사서 먹이고 빈그릇을 주방에 갖다놓고 

냅킨으로 바쁜 아줌마를 위해 테이블도 훔쳐주고 가는 형국이다.

이 아줌마는 어른들에게는 극히 귀찮지만 내가 팔긴 판다...라는 태도로 대하는데 유일하게 아이들에게는 진짜로 친절하다. 아이고 그래 엄마가 카드주고 갔구나? 이러면서 체육가방에 학교가방보따리를 제 덩치 두배쯤 매달로 온 안경잽이 초등행들에게 친절하게 말을 건네며 보따리도 못풀고 김밥 한줄에 돈까스 달라는 애들에게 밥부터 준다.  

그렇게 테이블 여남은 개와 육십년에서 하나도 안바뀐 듯한 낡은 집기와 떡볶이 국물등이 붙어있는 가스대등.....어떻게 이렇게 허름한 곳에서 저리 깨끗한 맛이 나는지 놀라울 정도다. 재료들을 훔쳐봐도 유기농 케찹 설탕 이런것은 찾아볼 수 없고 그냥 대용량 설탕과 대용량 당면 순대등 평범한 것들 뿐이다.


아무튼 이 분식집은 늘상 붐빈다. 나는 주인아줌마의 불친절이 어이없지만 그래도 여기라도 아니면 나는 입에 맞는 김밥을 못먹기에 가끔 가서 사먹고 오는데 그러다가 아예 아이이름으로 오만원씩 선결제를 해두고 아무때나 가서 먹으라고 하기도 한다. 학원 학교 오가느라 급히 한 끼 때우는데는 아무래도 김밥만한 게 없고 이 정도로 깨끗한 맛을 내는 분식집은 없으니까.


그런데 우연히 그 건물위의 스포츠센터의 운동강사와 친해진 후 그녀가 분식점 아줌마에게 이모이모하는 것을 듣고 그 아줌마의 요리솜씨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절에서 십년이상 사찰음식을 한 불교음식의 달인이었던 것이다.


나는 당시 사찰음식을 배우고싶어 여기저기 알아보는 중이었지만 대부분 사기꾼들이거나 터무니없는 강습비를 받거나 아니면 자기들도 사찰음식먹고 건강하지도 않은데 그런 척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좌절중이었다.


그런데 바로 코앞에 이런 전문가가 있었다니 등잔밑이 역시 어두운 법이다.


나는 운돈강사와의 친분을 앞세워 처음으로 인사를 트고 강습좀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아줌마는 깔깔 웃더니 

"아이고 그걸 뭘 배울라고ㅡ 그냥 집서 차분차분 함 다 돼" 라며 단번에 거절하였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진지한 학생인가를 호소하기위해 구십년대부터 모아온 선재스님 사찰음식이라는 책을 들먹이며, 헬렝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에 나오는 모든 요리들을 나는 진짜로 다 해봤다...ㅡ고 장사하듯이 설득의 묘를 발휘하였으나

"아이고 젊은 분이 그냥 슥 집에서 책보고 하면 되지 배울게 뭐 있어?"라고 또 짤렸으나 평소 불친절강도가 십이었다면 그 대화이후 그녀의 불친절강도가 7쯤으로 내려간 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하릴없이 돈까스를 먹으러 식당에 왔다가 우연히 벽위에 플라스틱 메뉴판을 읽고있다가 그위에 흰 종이에 

불취어상 여여부동이라고 한글로 쓰인 것을 보았다. 종이에는 기름때가 튀어 있고 매직으로 쓴듯 잘난 글씨도 아니었다.

저게 대체 뭔 말인가? 

일종의 활자중독증세가 있는 나로써는 얼른 구글을 검색했고 금강경의 한구절이라고 나왔다.

저걸 대체 왜 붙였나? 

나는 궁금한 것을 좀처럼 참지못하기에 돈까스를 먹고 아줌마에게 물어보았다.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 저게 뭔말이에요?"

그녀는 한참 점심시간에 밀물처럼 몰려온 초등들이 남기고간 그릇더미를 썰물과도 같은 솜씨로 빠르게 설거지하던 중이었는데 그말에 갑자기 눈이 엄청나게 커지더니 

아니 그걸 왜예?

이런다.

그러더니 그게 궁금해예?

또 묻고 유례없는 애정이 담긴 눈으로 나를 처음 바라봐준다.


아 네(나는 원래 모든 것이 궁금한 사십오세이기에...)


그녀는 설거지통에서 손을 빼고 갑자기 자기앞의 나무카운터밑에서 뭔가를 슥 꺼내는데 황금색 고서......같은 큰 책한권을 들이민다.

"이거, 함 읽어봐예"

마치 너 잘만났다.....라는 기세로.

그것은 불경의 중요경전을 모아둔 금강경 원각경등네개 경전집이었다.


금색이네 책이? 

신기한 마음에 넙죽 받아서 펴보니 일단 한자와 한글독음이라 뭔말인지

전혀 알길이 없다.(한글세대라 내이름도 한문으로 못 쓰는 무식자)


"그냥 죽 읽어봐예 뜻은 몰라도 됩니더"

나의 당혹한 얼굴을 보고 덧붙이는 그녀. 

"얼마죠?"했더니 

"아이무슨 공짭니다."

이러는 것이다.

공짜!

 그녀는 평소 컴퓨터와 같은 기억력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다양한 조합으로 결제한 분식값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척척 암산하는 여인인데.


그래서 오천원이라고 정가써있는데 드릴게요 했더니

아닙니더 이거는 제가 부처님가르침 드리는건데요

이러면서 단호하게 받지 않는다.


나는 아니 대체 불취어상여여부동이 뭐냐는데 이게 뭔 상관이에요?

그게 뭔 뜻이고 왜 붙여놨냐고요?

라고 물었다.

(니가 대답맡겨놨냐....하지만 나는 모든 궁금증을 해소해야한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그게 금강경구절이라예 

내 여기서 이십년장사하면서 저게 뭔뜻이냐고 물어본건 손님이 처음이라예

불법만나려고 그런것아님니꺼  받으이소"

이러면서 책을 주고 나는 엉겁결에 금강경이라는 것을 스르르  앉아서

읽게되었다.


빠르게 한권을 주마가편으로 읽고나니 그녀가 묻는다.

"어느 구절이 제일 마음에 와닿습니꺼?"

"아 저는 그 사구게만이라도

수지독송하고 요거하구요 절절해시이거요. 근데 엄청 멋있는 글이네요 하하하하."

내이름도 한문으로 못 쓰는 주제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고!!!!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얼굴로 카운터에서 나와서 앞치마도 벗어던졌다.

"보살님  우리 불가에서는 그리 불러요, 내 여기서 분식집을 하는 이유는 불법을 펴기위함이라

내가 나이가 육십중반이오 십억있어요. 내 나이쯤 되면 그 정도 재산은 크게 이상한 짓 안하면 다 지절로 모이게되어 있는기라!

 그래 내가 여서 분식집을 하는 이유는 부처님공덕을 짓기 위함이지 돈은 뭐 나는 이거 안해두 되는 사람이야 그런데 오늘 내가 경을 보살님게 전할라고 여기서 계속 장사를 해왔구만요!

틈틈히 천천히 조금씩 읽고 또 뭐든 내게 물어보고 


하이고 참말로 이래 법을 만나게 되는구나! 전생에

복을 많이 지으셨나베 참말로!"


라며 몇년이나 그식당서 밥을 먹었어도 일관성있게 찬바람생생나게 불친절하던 아줌마가 

부처라도 찾아온듯 너무나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어찌나 나를 붙들고 기뻐하던지 분식집 앞 스포츠용품점 아줌마가 손목에 스포초프테이프를 칭칭 감은채 와서 뭔 일인가를 살피었다.



아 그렇다.그래서 이 분식집은 음식이 청정한 맛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강 읽은 금강경구절처럼


바른 믿음은 희유한 것이다.

나는 무늬만 가톨릭교의 신자로

큰 감동을 받았다. 아마도 한국이 많은 악인들에 손에 금방 망할 것 처럼 보여도 안망하는 이유는 분식집 포목상 금은방 수퍼 도배집...모든 업종에 촘촘히 눈에 안 띠게 숨어 밀약하는 이런 희유한 믿음을 가진 보통 사람들의 기도와 불공이 많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나보다는 이 아줌마를 이뻐하실 것이다.

한문도 모르는 나에게도 불법의 위력을 보여주신 부처님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이 우러난다. 나같이 밥도 잘 못해먹는 자를 위해 이런 전문가 아줌마를 우리동네에 보내주시고 경도 주시다니...

이러한 바른 믿음이 한국을 지탱하고 있으니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